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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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AI.SW 창작 콘텐츠 공모전] 산문부문 우수상 - 허은서, <물만두 라일리>
관리자 / 2025-12-23
허은서(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물만두 라일리>
라일리가 정해둔 자리의 조명은 늘 일정한 밝기다. 마치 내 기분이라는 파동을 가늘게 눌러 평평한 선으로 만들려는 의도처럼. ‘감정 경향: 불안 57%, 초조 29%…’ 라일리는 그렇게 숫자로 나를 드러낸다. 그 찰나에 나는 어느새 51층 27-다 좌석에 얌전히 앉아 있는 영혼 없는 숫자가 된다. 겉으론 밝게 웃으며 “고마워, 라일리”라고 속임수를 던지지만, 그건 마치 금이 간 컵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건네는 짓과 다르지 않아서, 결국 마지막에는 라일리에 의해 스스로가 분해되는 걸 체념한 채 바라보게 된다.
‘스읍.. 하아.’, 라일리가 다음으로 필요한 권장 행동 지침을 제시하자 나는 그대로 순응하고, 곧 크게 호흡을 들이마셨다. 독서실의 공기는 지나치게 균질해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내가 아니라 누군가의 정제된 호흡을 대신 삼키는 듯했다.
평온한 이곳과 다르게 밖은 모순 천지다. 집에서는 부모님이 라일리의 보고서만 믿고 내 속내를 판단했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조차 라일리가 조정한 일정표에 따라 내 학습 태도를 평가했다. 엄마는 라일리를 마음에 들어했고, “이 시대엔 네가 더 자유롭겠지”라며 웃었지만 나는 엄마가 말한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AI의 배려인지 구속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은 조례, 종례마다 “AI의 도움을 잘 활용하는 게 곧 학생의 역량”이라며 강조하셨지만 지금 나는 활용이 아니라 라일리 안에 갇혀 라일리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수요일마다 국회 앞에서는 빨간색으로 ‘AIX’라고 흘려 쓴 듯한 굵은 글씨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못되어도 천 명이 모여 시위를 했다. 국회 주변의 학교나 학원, 독서실 등이 연합해 소송을 걸었지만 아직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한다. 우연히 그쪽을 지나가다 시위대 선두에서, 두 눈에 실핏줄이 터져 좀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는 정확히 나를 향해 소리쳤다. “자신을 되찾아라! 생각하는 교육을 받아라!”, 그 말은 도깨비 풀처럼 내 귀에 달라붙어서 몇 달간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을 되찾아라.” 라일리처럼 나 자신을 잘 알게 해주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가끔, 나를 모르는 것도 나의 어떤 모습의 일부가 아닐까, 라는 반항 어린 생각을 한 적도 있어서, 그 남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와닿았다. 내가 원하는 건 기울어진 채로도 버티는 자유였는데, 라일리는 그 경사마저 위험 요소라며 정비하려 들었으니까.
라일리가 분석한 감정 경향에 ‘기타’ 칸의 퍼센티지가 높아지더니 메시지 창에 ‘감정 측정 불가’라고 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정 시설’에 보내지게 되는 걸까 봐 걱정되는 마음으로 창을 응시하며 라일리의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다.
그러자 라일리는 갑자기 유튜브 추천 목록 하나를 띄웠다. 그중 가장 위에 있는 영상의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신인류의 사랑’.
의아한 호기심으로 클릭한 영상은 5분 남짓의 부드러운 그림체의 짧은 애니메이션이었다. 귀여운 물만두 모양의 작은 외계인이 등장해서, 자고 있는 지구인을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지키는 내용이었다. 지구인의 머리 맡에 떠다니는 여러 부정적인 말풍선들을, 물만두 외계인이 날아다니며 터뜨리고는 지구인에게 다가가 “네가 혼자 걸을 수 있도록 옆에서 기다릴게”라고 속삭였다. 그 순간 라일리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알 것 같았다.
나는 라일리에게 감정 분석 요청 범위를 줄여달라고 말했다.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오랫동안 묶여 있던 신경들이 제자리를 찾는 듯 따끔하게 깨어났다. 라일리의 디스플레이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듯 잠시 흔들렸고, 그 미세한 진동은 오래 묶인 끈이 느슨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두렵지만 슴슴한 편안함이 내 안에 흘러들어왔다. 이제 라일리가 이전처럼 나를 옭아매는, 혹은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자동화된 기계로 보이지 않았다. 라일리를 앞에서 걷게 두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지금부터는 내가 스스로, 내 다정한 친구와의 보폭을 조절하면서, 천천히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