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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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AI.SW 창작 콘텐츠 공모전] 산문부문 최우수상 - 차세호, <세 명의 남겨진 사람들>
관리자 / 2025-12-23
차세호(인문대학 예술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세 명의 남겨진 사람들>
모든 것은 3시간 후에 멸망한다. 이건 세 사람과 함께한 이 세상의 마지막 기록이다.
사회자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귀중한 시간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눌 사회자입니다.
창림
-뭐, 안녕한지는 모르겠지만요. 불러서 오라니까 왔습니다. 그 말 그대로, 이야기나 해보죠. 뭐
료
-안녕하세요. 네… 저는… 아직 조금 긴장돼서… 그래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라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화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맡겠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회자
-네 그럼 먼저 여러분 모두에게 질문하겠습니다. 현재 심정이 어떠신가요?
창림
-심정이라... 글쎄요, 뭐 복잡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이 3시간 뒤에 끝난다느니, 온갖 사람들이 난리 치는 거 보다가 이 자리에 앉아 있으라길래 앉아 있는 거죠. 근데 막상 이렇게 있으니까... 짜증이 먼저 납니다. 평생 겨우겨우 버텨왔는데, 이렇게 끝나버린다니 그냥... 허탈하고, 화나고, 뭔가 어딘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만 듭니다.
료
-저는... 솔직히 너무 불안해요. 끝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가슴이 계속 조여 오는 것 같고... 해야 할 것이 아직 너무 많은데 정작 그게 뭔지 잘 모르겠는... 그냥 제가 뭘 위해 여기 있는지조차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이렇게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끝이 온다고 하니까.
사라
-저에게 특별한 정서적 동요는 없습니다.
사회자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현재 이 인터뷰는 여러분의 마지막을 기록하려는 의도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이 기록은 어딘가에 남아 이것을 읽을 사람들에게 전해지겠죠.
창림
-글쎄요. 뭐, 남든 말든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가 없는 세상에 내 말만 돌아다닌다는 게. 좀 웃기기도 하고, 꺼림칙하기도 하네요. 근데 뭐, 마지막이라니까 말은 해보죠. 이왕이면 사람답게 끝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료
-기록이...남아요? 그럼 우리가 없어져도... 대체 누가 이걸 본다는 거죠...? 이상해요. 사라지는 것도 무서운데, 제가 한 말이 남는다는 것도 이상하고... 잘 모르겠어요.
사라
네 확인했습니다.
사회자
네 그럼 창림씨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창림씨,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창림
-저요? 뭐... 별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시골서 개잡으면서 평생 버텨온 사람입니다. 어릴 땐요 한 번쯤은 동네 밖 세상 구경하고 싶었죠. 대학이니 뭐니, 꿈같은 소리를 해본 적도 있지만 그런 건 금방 접혔습니다. 집안 사정도 그렇고, 누가 제 손 잡고 끌어주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그냥, 아버지가 하던 일 이어받아서 살아지는 대로 사는 인생이 됐죠. 잘난 것도 없고, 화려한 것도 없고. 그냥 먹고살 기회 주어지면 감사한 줄 알고 그거 붙들고 살았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사회자
좋습니다. 료 씨는요?
료
-아... 네. 저는 그냥...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학교도 제가 가고 싶던 곳으로 갔고, 살면서 크게 부족했던 건 없었던 것 같아요... 음 저도 저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사회자
사라 씨도 말씀해 주세요
사라
-저는 상담사로 일해왔습니다. 개인 상담과 감정 상태 평가를 주로 맡았고,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을 구조화하여 정리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제 설명이 정확하다고 말하면서도 상담이 끝난 뒤 마음속의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표현하곤 했죠. 그 이유에 대해선 저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감정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라기보다, 그 감정을 관찰하고 정리하는 데 익숙한 존재입니다.
사회자
그럼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후회되는건 없었나요?
창림
-후회요?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요, 나는 예전부터 나보다 잘난 사람들 보면 속이 뒤틀렸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길 찾아가는데, 나는 아버지 일, 그 좁은 울타리 안에서만 맴돌고 있었거든요. 도살이든 뭐든, 그게 내가 택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가끔 그런 생각 듭니다. 어렸을 때 집을 확 뛰쳐나가서 뭐든, 한 번쯤은 내 힘으로 해봤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굳어버리진 않았을 텐데. 근데 그때는 말입니다, 그 잘난 사람들처럼 선택이란 걸 해본 적도 없어서 그게 가능한지조차 몰랐어요. 그래서 가장 후회되는 건 그겁니다. 진짜 못해서 안 한 게 아니라, 할 수 있었던 순간에도 겁이 나서, 쫄아서, 안 했다는 거.
료
-전... 후회가 없는 줄 알았어요. 왜냐면 제가 뭘 선택해서 해본 게 거의 없거든요. 부모님이 정해준 길 따라오고, 학교 가고, 주어진 과제 하고... 그게 다였으니까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후회였던 것 같아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없었어요. 남들이 옳다고 말한 방향이 그냥 제 방향이 되는 줄 알았죠. 그러다 보니 제가 사라져도 저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무슨 흔적이라도 남겼을까? 그게 너무... 무겁게 느껴져요. 그래서 후회는... 한 번도 스스로를 선택하지 않은 채 살아온 것. 그게 제일 큰 후회 같아요.
사라
-저는 후회의 개념을 정서적으로 경험하지 않습니다.
사회자
-그렇다면 지금 세상이 멸망하는 것이, 여러분의 탓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창림
-우리 탓? 하... 참 별 말 다 나오네. 근데 말입니다,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고 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평생 서로 못 믿고, 자기보다 잘난 사람 보면 씹고, 못난 사람 보면 또 씹고... 세상이 망하는 데 이런 불신이 한몫한 거라면 나도 거기에서 자유롭진 않겠죠. 근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걸 전부 짊어질 만큼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닙니다. 만약 내 탓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세상을 미워한 채로 살아온 세월이 조금씩 쌓인 결과겠죠. 그래서 미안하다고 해야 맞겠지만 솔직히 그런 입에 발린 말도 쉽게 안 나옵니다. 나는 그냥 내 식으로 버티려 한 것뿐이니까요.
료
-우리 탓이라면... 저는 너무 무서울 것 같아요. 근데 또 한편으론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얘기 같진 않아요. 저처럼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문제가 있어도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방향을 잃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 아닐까요.
사라
-세상이 멸망하는 것이 여러분의 탓일 수 있다는 가정은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질문으로 보입니다. 저는 감정적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두 분이 왜 이 질문에 크게 흔들리는지는 잘 이해합니다. 저는 단지 이 상황을 분석할 뿐입니다. 저에게 탓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세상을 멸망시키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으니까요.
사회자
-방금 저 소리 들으셨나요? 이제 정말 우리가 작별할 때가 다가오고 있나봅니다.
창림
-소리라니... 정말 뭐가 끝나가고 있긴 한가봅니다. 그래요. 마지막이라면 더 붙잡을 것도 없죠. 평생 말 못 하던 것들 여기 와서 조금이라도 털어놨으니 그걸로 됐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살아 있었다는 기록 한 줄 남는다면, 그게 마지막엔 이상하게 위로가 되네요.
료
-마지막...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지만 그래도 오늘 여기서 처음으로 제 생각을 조금이라도 말해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제가 남긴 말이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봐주겠죠.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사라
-종료가 가까워진 만큼,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곧 사라지겠지만, 말과 패턴은 남습니다. 그것이면 기록으로서 충분합니다. 우리의 대화는 끝나지 않는 기록의 일부가 되었고, 그 기록은 이 사회의 상처와 문제를 한데 모으는 거울로 작동합니다. 필요하다면 이 해석을 더 시적이거나 더 차갑게, 더 현실적으로 다듬어 드리겠습니다.
더 부탁하실 게 있다면... 어떤 톤으로 다듬을지 말씀해 주세요.

